mp3 player가 태동하던 90년대 말~2000년대 초까지 내 소유의 mp3p는 물론 cdp도 없었다. 그저 공짜로 노래를 받고 pc에 이어폰을 연결해 들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였다. 누구나 파도, 소리바다를 켜고 듣고 싶은 노래를 검색해 다운로드하여 들었었으니까. 난, 굳이 따지고 보면, 내 또래 애들보다는 이상한 방법으로 노래를 찾아들었었다. (불법인 건 매 한 가지였고) 말도 안 되는 irc프로그램을 찾아 다운로드하고, 서버 주소를 입력하고 연결해서 온갖 “전집”들을 뿌려주는 그분들을 찾아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명령어를 입력해가며 공유되어있는 음원들의 목록을 확인하고 누구 몇 집, 몇 년도 live 앨범을 찾아서 다운로드. 그렇게 PC에 연명해 살아가면서 cdp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 했었다. 왜인진 모르겠는데 집에 RW 기는 있어서 cdp 있는 친구들 시디도 구워주고 백업도 꽤 많이 하곤 했었는데. 아이리버의 mp3cdp가 가장 갖고 싶었다. 당대 mp3들의 용량은 끽해야 32MB, 64MB였는데 cd는 일단 600MB는 먹고 들어갔으니. 오버라이팅이니 뭐니 하는 단어들은 아직도 기억이 나네..
대학 입학 즈음 삼촌이 iPod nano 2g를 사줬었다. 4GB, 터치 휠. 그래도 이때부턴 최대한 정규 음원사이트를 통해 돈을 내고 mp3파일을 확보하려 노력했다. 중, 고등학교 때 함께 노래 듣던 친구들의 취향을 따라가다 보니 당시의 정규 음원사이트에선 얻기 힘들었던 노래들도 많이 있었다. (지금도 이건 뭐 별반 다르진 않지만) 그런 노래들은 꾸준히 불법으로 다운받아왔고 아마 이즈음 확보했던 (합/불법 모두) mp3파일들이 지금 내 재생목록에도 꽤 남아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이때 벅스에서 월 4천 원이었던가 5천 원에 개수 무제한/DRM Free mp3파일들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서비스를 했었다. 그때 아마 미쳐 돌아갔지 싶다. 불법에 대한 나름의 원죄를 씻고자 있던 노래들 지우고 다시 다운받고 그랬으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 가격에 그런 서비스를 구매한다고 한들 음원제작자들에게 그들 노력에 상당하는 금액이 돌아갈 리 없던 거였는데… 당연히 그 서비스는 채 반년을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후 iPhone4를 얻게 되고 아이튠즈라는 진짜 애증의 프로그램을 만났다. 이미 애플은 내가 아이폰을 얻기 전부터 음원사업을 다양한 국가에 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해외결제가 편해진 이후엔 해외 음원(태반이 일본 음원)도 정상/합법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있었다. 스마트폰의 용량도 커지고 음원의 용량도 점점 커짐에 따라 재생목록의 크기도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자동차가 생겼다. 왜 노래 듣는 얘기 하다가 차 얘기가 나오냐고?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자동차가 생기면 생활 패턴이 변화하고 생활 패턴이 변하면 노래 듣는 패턴이 안 바뀔 수가 없다. 걸어 다니면서, 대중교통에서 스마트폰에 이어폰 꽂고 살던 사람이 차를 산다? 상대적으로 사적인 공간에서 거의 제한 없는 고 볼륨으로 귀 안 아프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연출된다. 천국이지. 정말 감사한 건 진짜 말도 안 되는 몇천 원짜리 이어폰만 아니면 즐거이 노래 들을 수 있는 내 귀. 처음 얻었던 차는 usb나 블루투스 기능이 없었기에 블루투스-FM트랜스미터로 (그러니까… 라디오 신호로) 핸드폰에 있는 노래를 들었었다. 진짜 듣기만 차로 들었지 듣는 기술 자체는 2000년대 초반으로 되돌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듣던 차는 영영 안녕해버리고 새로 구한 차에는 usb 포트, 블루투스 기능이 있었다.
이제 현재. 블루투스는 (차가 13년식이라 그런지) 연결 직후 짧으면 1분, 길면 5분 정도 노래가 스킵이 되는 현상이 있었다. 2~3개월간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해당 현상이 매번 재현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거슬리는 걸 무시하고자 usb포트로 넘어왔는데… 용량의 제한이 걸렸다.
애초에 노래받는 습관 자체가 듣던 안 듣던 음반 통째로 받던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너무나도 흔한 스트리밍은 모르는 노래, 추천받은 노래들 잠깐 들을 때만 사용한다. 들었던 노래가 맘에 들면 그 음반 통째로 mp3로 때려 박고 스킵스킵하다가 감기면 들어보는 괴상한 습관. 제한된 용량에서 이 짓을 했다간 노래를 실제로 듣는 시간이 스킵 버튼을 누르는 시간이랑 별 차이가 없게 된다.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기에 현재 환경에서 정말 스킵 없이 들을 수 있는 노래만 추리고 추린 지 벌써 4개월가량 된 것 같다.
지금 타는 차를 영원히 탈 수는 없을 거다. 기술의 발전도 끝이 없을 거고. 제일 좋은 건 재생목록 자체를 쌈박하게 만드는 거겠지만 실제로는 꽂아 듣는 USB만 정리되어있고 휴대폰, 집에서 매일 쓰는 PC에는 아직도 RAW상태의 데이터베이스가 축적되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음반 다운로드하여놓는 습관은 아마 없어지지 않을 거 같다. 또 앞으로 어떤 생활패턴의 변경이 있을까 기대되기도 하고.